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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 일본 음악, 힙합 문화, 뉴노멀 시대 음악 전망

MTV가 만들어낸 스타들(마이클잭슨, 마돈나)

MTV가 만들어낸 스타들(마이클 잭슨, 마돈나)

MTV가 만들어낸 스타들(마이클 잭슨, 마돈나)
MTV가 만들어낸 스타들(마이클 잭슨, 마돈나)

1982년 MTV에서 방송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는 최다 시청 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대중 음악계의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되는데요. 음악에서 뮤직비디오의 비중이 커지면서 MTV의 발전과 연결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마이클 잭슨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입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 시절부터 잘 알려진 가수였지만 성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독립적으로 음악을 하게 되면서 그의 유명세를 도운 것이 바로 이 뮤직비디오였습니다. 이 뮤직비디오는요, 13분이 넘는데요. 그래서 하나의 단편 영화라고 할 정도로 길이가 깁니다. 그래서 이것은 최초의 스토리가 있는 뮤직비디오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릴러 앨범은 팝 역사상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기네스 음반인데요. 서구 시장뿐만 아니라 심지어 소련의 암시장에서도 거래될 정도였고요. 일본에서는 자그마치 65주간 인기 차트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국제적인 아이콘으로 등극한 순간이 바로 이 스릴러 앨범이 나왔을 때였는데요. 한국에서도 50만 장이 팔리면서 마이클 잭슨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죠. 흑백 인종 차별이 극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조차도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되자 미국의 한 레코드사 간부는 마이클 잭슨이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 인종 차별의 갭에 다리를 놓았다고 평가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마이클 잭슨은 80년대의 최고 가수인 동시에 또 80년대 대중 음악계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가수였습니다. 다른 한편 마이클 잭슨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지배했던 그런 보수적인 이념의 시대에 적합했던 가수로도 평가받고 있는데요. 그는 술과 담배, 또 마약을 하지도 않았고요. 또 신실한 청교도주의의 규율을 지켜가면서 지극히 보수적인 사생활을 지켜나간 탓에 보수적인 그 미국의 제도권 인물로 보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캐나다의 시사 주간지 '맥클린'의 한 기자는요. 84년에 이런 기사를 썼는데요. 엘비스 프레슬리, 밥 딜런, 비틀스와 같은 팝 스타들은 정치적 현상에 대해 도전했지만 마이클 잭슨은 그와 대조적인 제도권 인물로서 레이건의 보수적인 미국과 완벽히 조화되었다고 썼어요.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이런 절제와 개인주의, 또 가족을 중시하는 가치관 이런 것들은 레이건의 공화당 통치 이념과도 잘 맞물렸고요. 또 레이건 행정부는 이런 잭슨을 바람직한 청년 또는 바람직한 흑인의 어떤 모델로 간주하면서 84년에는 백악관에 초청도 하고요. 또 공공 생활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퍼블릭 서비스 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레이건은 이 마이클 잭슨이 알코올이나 약물 남용이 없는 생활 방식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증거라고 말하면서 특히 이 'Beat it'이라는 곡이 그 폭력이 만연된 사회에서 폭력에 가담하지 말고 한발 물러서라.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뭐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마이클의 노래는 현실에 반항하는 내용도 아니었고 또 흑인 특유의 필이 담긴 소울 뮤직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잭슨의 노래는요. 백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어요. 그래서 힙합 신에서는 잭슨에게 '백인이 못 돼서 안달하는 소수 지배층 흑인 똘마니' 뭐 이런 말도 했고요. 또 '위선적인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거침없이 얘기하기도 했고 또 거의 완벽하게 백인적 활동을 했으며 또 그 활동들을 하면서 사실상 흑인들을 소외시켰다 라는 좀 심한 말도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잭슨의 아버지인 조는 잭슨의 음악이 세대나 계층, 인종을 초월한 음악이라고 이런 평가에 응수하기도 했는데요. 잭슨의 음악은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는 타입이다. 또 흑인이건 백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제공하는 게 바로 잭슨의 음악이다. 그것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기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세계를 위한 음악이고 또 세계인이 청취하고 구입하고 또 그 곡에 춤을 맞춰 추고 있다 라는 말로 모든 평가에 대해서 대립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잭슨의 음악은 아주 잘 팔릴 수 있도록 치밀하게 기획된 완벽한 상품이기도 했습니다. 잭슨의 매니지먼트 팀은 또 이 뮤직비디오 전문 채널인 MTV를 홍보 매체로 또 적극 활용했었는데요. 이 MTV도 모든 세대가 즐기고 잘 팔리는 상품인 잭슨의 음악을 다시 또 집중적으로 편성해주기도 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TV 시대의 스타였다면 바로 이 마이클 잭슨은 MTV의 스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이클 잭슨의 마니아들은요. 이 뉴미디어인 MTV가 야기한 열풍으로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마돈나

마돈나 역시 MTV가 만들어낸 슈퍼스타 중의 한 사람인데요. 마돈나는 엄청난 히트곡들을 양산했지만, 마돈나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곡은 역시 'Like a Virgin'이라든가 'Material Girls'입니다. 이 곡들은요, 마돈나의 정체성을 드러낸 곡으로도 유명한데요. 당시의 대중 음악계에서는 이처럼 과감한 성적 표현이라든가 또 자신의 어떤 탐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돈나의 이런 행보는 동시대의 뮤지션들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당혹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돈나는 전자음을 이용한 댄스 뮤직을 토대로 해서 기꺼이 자신이 대중문화의 상품으로 활용되는 것을 즐겼습니다. 심지어 노이즈 마케팅으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그것을 홍보로 활용하기까지 하는 대담함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마돈나의 어떤 성 퍼포먼스는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마돈나의 인기와 음반 판매는 폭발했습니다. 그것으로 스타덤을 유지하고, 확대하고, 재생산 해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돈나는 항상 성적 표현의 자율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랫말에 어떤 성적인 암시를 담기도 했는데요. 성에 대한 표현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금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오히려 더 불건전한 성생활을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돈나는 성적 표현 중에서도 여성의 자기 결정의 파워를 강조했기 때문에 특히나 그 여성 팬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사회적인 화제가 되면서 그런 언론 플레이를 역이용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도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마돈나는 이미지 세일의 시대적 추세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거죠. 심지어 마돈나는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돈이고 또 자신은 그런 돈을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마돈나의 이미지는 MTV 시대에도 아주 안성맞춤이었죠. 과감한 성적 표현으로 자신을 이미지화하고 또 출세 지향의 세계에서 물질적 욕망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대중의 욕망을 대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돈나는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긴 했지만요. 그와 동시에 인간 내부에 드리워져 있는 성의 제약과 억압을 해방하는 데 기여했다는 옹호론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마돈나의 이런 행보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록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했다는 면에서 한편으로는 위대한 록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마돈나를 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그녀의 2집 앨범 'Like a Virgin'은 지금도 마돈나의 상징이 돼 버린 앨범인데요. 종교나 젠더, 인종, 돈, 출세, 인간의 탐욕 등 마돈나는 금기시된 어젠다들을 자신의 노래에 담고 또 그것의 해방을 꾀하면서도 우상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출세 욕망과 또 돈을 벌고 싶다는 그런 욕구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본성을 해방하는 것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죠. 마돈나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와 프로듀서 등에 지속적인 노력을 보여주었던 그런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태도의 순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그런 행보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에너지와 열정의 우수성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80년대의 디스코 열기는 결국 다른 팝 장르보다 빨리 식은 경향이 있지만요. 그 대신 그것은 팝의 제작 방식을 바꾸어 놓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상 최초로 리듬과 박자가 히트하는데 뭔가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요. 또 그것을 팝에 도입시켰던 것이 바로 디스코였는데요. 이런 디스코는 리듬을 팝의 본류 안으로 끌어들여서 대중을 완전히 평정했고요. 또 그것이 대중에 영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문화 산업과 상품의 관계를 논할 때 그 팝 음악계에서는 이런 섹슈얼 이미지를 가장 흔하게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마돈나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정당화시켰고 그 이후에 엔터테이너에게 빈번히 활용되는 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마돈나에게는 성의 상품화 시대에 그것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한 것이기도 한 동시에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에 대한 도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록의 전설을 대표하는 명단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보여주는 음악으로 만든 MTV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여주는 음악으로 만들어 주었고요. 또 MTV는 그런 제작 시스템을 확장시켜 갔습니다. 예전의 라디오라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 주류였다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춤은 TV로 시청할 수 있었고요. 또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MTV의 비디오 시대를 열면서 최신 미디어로서의 영향력을 갖추게 되기도 했죠. 결국 음악은 곧 오디오라는 인식을 한꺼번에 바꾸어버린 것이 바로 이 MTV였습니다. 뮤직비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음악 평론가들은 음악의 예술성이 갖는 가치가 중시되기보다는 외모를 좀 더 우대하고 여성 뮤지션들을 상품화함으로써 상업주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냐? 또는 이미지가 노래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냐? 뭐 이렇게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뮤직비디오는 댄스 음악을 하는 가수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이어 스트레이트라든가 피터 가브리엘, 에릭 클랩튼, U2 등과 같은 이 록 스타들이 뮤직비디오의 지원을 통해서 음반 판매량을 증가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뮤직비디오는 뮤지션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막강한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죠. 사실 뮤직비디오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국 그룹인 퀸의 기념비적인 싱글 '보헤미안 랩소디'부터였습니다. 이 보헤미안 랩소디 영상은 지금 봐도 하나의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 듯한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완성도가 높은 영상인데요. 당시에 BBC는 9주 연속 퀸의 비디오를 방영해 주었고요. 또 9주간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보여주었고 또 그를 통해서 뮤직비디오의 활성화에 어떤 기틀을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81년에 MTV가 처음 개국했을 때의 첫 방송이었던 곡이 'Video kill the radio star'였다는 것은 바로 이 라디오 스타를 죽이고 비디오 스타가 시대에 등장한 것을 알려주게 된 선언이자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는데요. 실제로 뭐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과 같은 그 화려한 패션과 새로운 미학을 무기 삼아서 이 라디오 스타를 죽인 비디오 스타들이 실제로 대거 등장했고요. 또 플래시 댄스, 페임, 풋 루주, 더티 댄싱과 같은 이런 댄스 영화들이 인기를 얻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MTV 시대는 이미지 중심의 스타를 만들어 주었고요. 또 그 이후에 등장한 모든 팝 스타들은 오디오가 아닌 뮤직비디오를 필수 요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마돈나라든가 신디 로퍼와 같이 80년대의 댄스 음악 스타들은 레이건 부시 공화당 정부의 그런 보수적 통치 이념과 맞물린 상업적이고 물질적 가치를 최우선시했던 팝 가수들이었습니다. 저항 정신을 슬로건으로 하는 록 음악조차 그런 대세를 물리칠 수 없었을 정도로 뮤직비디오의 열풍은 사라질 줄 몰랐고요. 또 그것은 보수적인 사회에 상업주의의 음악 시대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미지가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이 뮤직비디오가 실현해 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