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전파 시대의 소나타 형식 음악의 등장 고전파 시대의 소나타 형식 음악의 등장 음악을 「말」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문장으로 정리하는 완성 방식, 약속 말, 그런 것이 이 시대에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 최대의 것이 「소나타 형식」이다. 여기에서 발전한 「교향곡」이라든가 「피아노 협주곡」, 실내악의 「현악 4중주」나 「피아노 소나타」 같은 악곡 형식도 이 시대에 완성되었다. 화성(和聲) 음악 전시대 즉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였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과 화성 음악시대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음악의 아름다움을 비교해 보자. 바흐의 피아노곡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음악을 들어 보면 곧 알 수 있겠지만 바흐가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은 몹시 엄격한 법칙 하에서 규칙적인 반복음을 거듭하고 있다. 또 서로 대립하면서 하나로 합쳐.. 낭만파 시대의 음악과 음악가 낭만파 시대의 음악과 음악가 낭만파 음악은 쉽게 말하면 「음악의 작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도 제후나 귀족, 교회 등의 관례나 형식에 구애되어 자유로운 발상이나 표현이 불가능했던「작문」과는 다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자각,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되다고 하는 이상을 갖고 쓴 작문이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커다란 불행 속에서도 그를 극복하기 위해 강한 의지와 용기를 보인 베토벤,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서정적인 노래로 작곡했던 슈베르트, 그 외에도 조국에 대한 격렬한 애정이나 실연의 고뇌 속에서 연인이나 아이들에 대한 동정 등 그 무엇에서나 음악 작곡의 소재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표제음악의 등장 곡명에는 그냥「피아노 소나타 제10번」이라고 한 것도 있지만,「페르시아의.. 프랑스혁명 이후 민족들의 음악 트렌드 프랑스혁명 이후 민족들의 음악 트렌드 1848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나 짧은 기간이나마 프랑스는 독재자 없이 공동으로 정치를 시행하는 공화제 사회를 재차 구축했다. 이 혁명을 곧 오스트리아로 비화해서 3월에는 빈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심지어 독일에서는 베를린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을 신호로 그때까지 오스트리아 등에 억눌려있던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의 민족이 일제히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에 따라 음악도 변해갔다. 오페라의 경우를 본다면 향토의 오래된 전설이나 민화(民話)를 자기 민족의 말과 음악으로 작곡하기 시작했다. 성악이나 기악에서도 민족의 민요나 민속 무곡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도 한편으론 극장이 대단히 중.. 바로크 시대의 음악 특징들 바로크 시대의 음악 특징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이르는 시기는 바로크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음악이 크게 발전했던 시대로서 성악 중심이었던 음악에서 기악을 사용해서 앙상블을 즐기게 된 시대이기도 하다. 기악만이 아니고 성악과 악기의 앙상블인 오페라도 탄생, 그때까지 낡은 형식에 매어 있던 습성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생생한 연주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악기가 현저하게 발달해 있었다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다. 이 시대 예술의 일반적인 특색으로는 규모가 컸고 효과를 과장한 외에도 디자인이 화려했다는 점이다. 또 감정표현이 풍부해서 드라마틱한 성격이 강했었다는 것도 그 특색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음악 쪽에서는 이탈리아의 오페라나 협주곡풍의 작품 등에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의 등장 과정 오케스트라와 오페라의 등장 과정 그리스 시대의 음악이 연극과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오페라를 탄생시켰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오페라는 제후나 귀족들의 축전 음악 아니면 시민들이 단순히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점차 민족운동이 확산되면서 오페라도 그러한 민족의 숙원을 포용해가는 방향으로 전환되어갔다. 보헤미아의 스메타나나 러시아의 무소르그스키 등의 작품이 바로 그렇다. 바그너는 독일인이다. 그리고 독일이 선진국인 영국이나 프랑스에 뒤지지 않으려고 서둘러서 국내 통일을 모색, 그 통일을 완성시키는 시기에 활약한 음악가이다. 그러나 바그너는 오페라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와 성악의 앙상블로 이어져가는 음악 이.. 19세기부터 20세기 사이의 음악의 흐름 19세기부터 20세기 사이의 음악의 흐름 프랑스의 인상파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눈에 비친 느낌, 인상을 중요시하는, 즉 실제 로거기에 있었던 풍경이라든가 물건의 형체나 색 따위가 아니라, 화가에게 준 인상을 느낀 그대로 표현한 그림이다. 마네나 모네, 르느와르, 고호, 고갱, 세잔느 등의 화가가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위에 열거한 모네는 그러한 수법으로 그림을 그린 대표적 화가다. 모네는 마음속에서 느낀 인상을 「색」의 모임으로 표현했다. 이 「색」은 그저 무턱대고 그린 것이 아니다. 「색」이 모였을 때의 효과를 충분히 생각하고 계산해서 하나하나의 「색채의 점」을 정성껏 그렸던 것이다. 인상주의 음악도 대개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그너나 말러의 음악이 규모를 크게 확대.. MTV가 만들어낸 스타들(마이클잭슨, 마돈나) MTV가 만들어낸 스타들(마이클 잭슨, 마돈나) 1982년 MTV에서 방송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는 최다 시청 뷰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대중 음악계의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되는데요. 음악에서 뮤직비디오의 비중이 커지면서 MTV의 발전과 연결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마이클 잭슨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입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 시절부터 잘 알려진 가수였지만 성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독립적으로 음악을 하게 되면서 그의 유명세를 도운 것이 바로 이 뮤직비디오였습니다. 이 뮤직비디오는요, 13분이 넘는데요. 그래서 하나의 단편 영화라고 할 정도로 길이가 깁니다. 그래서 이것은 최초의 스토리가 있는 뮤직비디오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릴러 앨범.. 뉴 노멀 시대의 청년 문화 뉴 노멀 시대의 청년 문화 이런 생활에 대한 적응이 어려운 세대가 있을 수 있고요. 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세대가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뉴 노멀의 시대에는 이 세대 간의 갈등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세대 논쟁이라는 거는 늘 있어왔지만 현재와 같은 뉴 노멀의 환경에서 세대 격차는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을 하나의 세대론으로 구분했던 최초의 시기는 2차 대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이전 강의에서 그 50년대 로큰롤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청년 문화를 살펴보았듯이 청년들이 대중문화로 자신을 표현하던 것은 바로 2차 대전 이후부터였고요. 그 대중문화가 하나의 중요한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게 된 시기는 바로 60년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60년대 청년 문화는 하나의 큰 전환점을 .. 뉴노멀시대와 대중음악의 역사 - 케이팝 뉴 노멀 시대와 대중음악의 역사 - 케이팝 대중음악의 역사라는 것은요. 사실상 그 미국에서도 세대 간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에 좌우되어 왔던 적이 많았는데요. 과거만 살펴보더라도 1950, 1960년대는 백인 중산층을 기준으로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갈등이 미국 주류의 음악을 만들었었죠. 그리고 제2차 대전 이후 미군이 주둔해 있었던 아시아 국가들에는 미국의 대중가요가 전파되었습니다. 또 그 이후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흑인 노동계급 청년 문화와 백인 노동계급 청년 문화가 주류 헤게모니를 석권했었고요. 또 2000년 이후에 와서는 아시아의 청년 문화가 또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후 아시아의 대중음악이 주류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것도 대중음악의 뉴 노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 뉴 노멀 시대의 음악과 세계의 문화 동질화 현상 뉴 노멀 시대의 음악과 세계의 문화 동질화 현상 방탄소년단을 비롯해서 케이팝(K-POP) 아이돌이 맹렬한 기세로 전 세계의 문화 패턴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90년대에 시작된 거대한 흐름인 세계화와 정보화가 초래한 새로운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20세기 산업사회는 인간의 노동과 자본이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간주되었었죠. 하지만 21세기는 정보 통신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노동과 자본보다는 지식과 정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정보사회라고들 하는데요. 즉, 20세기가 산업사회였다면 21세기는 정보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화된 우리 사회는 인터넷을 통해서 전 세계의 문화 교류 방식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케이팝이 대규모의 해외..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