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힙합의 대표 래퍼들(투팍, 에미넴, 켄드릭 라마)

1990년대의 흑인 힙합이 기존의 대중음악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아마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서 간신히 버텨야만 했던 청소년기의 암울한 감정을 날것의 언어로 토해낸 음악 예술이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갱스터 랩이 '리얼리티 랩'으로도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요. 실업자가 된 아버지,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매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던 유년기 그리고 흑인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사회적 차별과 패배감을 견디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청소년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습니다. 지옥과도 같은 자신들의 삶을 날 것의 언어로 뱉어내면서 새로운 공감과 연대를 형성하며 희망을 밝혀준 래퍼 형들은 절망과 좌절에 함몰되어 있던 흑인 소년들에게 더없이 멋지고 존경스러운 존재로 비쳤겠죠. 랩은 이렇게 흑인 청년들의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적합한 장르라는 것을 깨달았던 투팍은 자신의 랩에 성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존엄성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투팍은 예술과 교육의 결합을 통해 흑인사회에 확산되어 있었던 상처와 패배주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데뷔하기 전에 쓴 첫 시의 제목이 '콘크리트에서 핀 장미'였다는 사실은 그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질곡을 극복하고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면서 피어난 장미였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투팍의 랩 가사들은 학교를 비롯한 청소년 시설과 교도소 등에서 결손가정이나 빈곤과 관계된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이용되고 있는데요. 투팍이 사망한 직후인 97년에는 버클리대학에서 '역사 98: 투팍 샤커의 시와 인생'이라는 강좌가 개설되기도 투팍은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하면서 불법 총기 소지, 성희롱 사건 등 갱스터의 무법자적 태도로 자주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고는 했는데요. 96년에는 랩 역사상 최초의 더블 앨범인 'All Eyez On Me'을 발표하면서 닥터 드레와는 완전히 차별되는 사운드를 선보였습니다. 여기에는 négritude, 즉 흑인 성에 대한 자부심이라든가 성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 갱스터의 삶에 대한 옹호, 뉴욕 래퍼들에 대한 조롱 등을 대담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성공의 정점에서 많은 의문을 남긴 채 총기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갱스터 래퍼 대부분이 한 장의 히트 앨범을 남기고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데 비해서 흑인 청년들의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린 몇 안 되는 뮤지션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음악적 열정과 생애가 흑인적 정통성을 동시대의 청년들에게 확인시켜준 결과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힙합에서의 백인 아티스트 - 에미넴
흑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힙합 음악에서 게토의 삶에서부터 시작해 전설의 위치에 오른 백인 힙합 아티스트가 있죠. 바로 에미넴인데요. 에미넴은 1990년대 힙합의 황금기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2000년대를 점령한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의 1명으로 꼽히고 있죠. 에미넴은 장르를 불문하고 2000년대 이후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가수이기도 합니다. 또 음악 장르에 존재하는 인종의 벽을 부쉈다는 점이 같아서 에미넴을 힙합계의 엘비스 프레슬리, 21세기의 마이클 잭슨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에미넴은 대중성, 작품성, 랩 스킬 모두 잘 갖추고 있는 래퍼로도 유명한데요. 라임도 좋고 펀치력도 좋고 자기 안의 추악한 면이나 내면의 다양한 자아를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준 래퍼로도 유명합니다. 에미넴의 음악 스토리텔링에서 자신의 또 다른 캐릭터, 또는 자아로써 '슬림 셰이디“가 있는데요. 영화 8마일에는 에미넴이 직접 출연해서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살았던 청년 시절의 에미넴이 흑인의 전유물이었던 힙합 신에서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에미넴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힙합 뮤직에 입성한 과정과 자전적인 이야기를 잘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80~90년대의 뮤지션들을 다룬 영화에서는 약물에 대한 스토리가 참 많은데요. 레이거노믹스 시절 대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확산되었던 약물 소비의 증가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죠.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게토에 있는 흑인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약물은 빈곤층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고 랩은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인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죠. 또 현실이 비참할수록 랩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 대해서 보다 과감하게 말하기 시작했고요. 또 그런 자신들의 삶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장치들을 고안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숙맥이었던 래퍼도 자기 고백적인 가사를 들고 나와 랩을 하나의 해방의 도구로 활용하게 된 것이죠. 그런 현실을 고발하는 래퍼도 그런 가사를 듣는 청자도 함께 힐링의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삶의 고통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랩은 이렇게 리듬, 비트, 라임, 플로, 비유, 상징 등이 결합되어서 공감을 일으키는 예술이 되어갔죠.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던 래퍼들은 게토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 열망과 그 과정을 자신의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즉 밑바닥에서 올라와서 자기 스스로 성공을 이루었다는, “무일푼에서 거대 부자로”, 부자가 되었다는 그런 서사 구조가 랩의 문법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빈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올라가야 하는 목표가 있었고요. 그 목표를 위해 쉼 없이 훈련을 거쳐서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목표를 달성했다는 그들의 삶의 태도는 삶의 하나의 원동력이자 또 후배 래퍼들의 동기 부여로도 작용했습니다. 힙합에서 이러한 자수성가는 우리가 만들어낸 음악과 예술을 통해 나는 가난뱅이 신세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었고 이것은 곧 나 스스로 힘으로 바꾸어 놓은 결과였다는 점에서 하나의 자기 증명식 화법이었죠. 에미넴의 자전적인 영화인 8마일은 백인이기는 하지만 게토에 있는 흑인과 동질감을 느꼈던 에미넴의 셀프 메이드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켄드릭 라마
이번에는 켄드릭 라마를 조금 볼까 하는데요. 켄드릭 라마는 명실상부 현존하는 최고의 래퍼 중 한 명이죠. 또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아티스트로 거론될 정도로 각종 사회 이슈와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담은 철학적 가사는 일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성공까지 거둔 이 시대의 독보적인 최고의 아티스트로도 손꼽히는데요. 미국 컴프턴 출신의 래퍼이기도 하죠. 그래미 어워드는 힙합에 대해 그동안 굉장히 보수적이었는데요.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에 항상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그래미의 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중성을 갖추었고 작품성과 평단의 평가까지 다 갖춘 완성형 래퍼로도 평가되는데요. 가사 내용도 아주 심오합니다. 특히 흑인 사회에 대한 고찰이 뛰어나고요. 랩 스킬도 뛰어나고요. 또 플로어 유형도 다채로워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켄드릭 라마의 팬을 자처할 정도입니다. 서부 힙합의 거물들에게 인정과 지원을 받기도 하고요. 스눕독에게는 서부 힙합의 왕이라는 칭호와 횃불을 이어받으면서 진정한 서부 힙합의 대표로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켄드릭 라마는 사회, 종교, 문학, 교육, 인종 등에 대한 진중한 고찰이 담겨 있는 메시지가 돋보이는 가사에 대중성도 놓치지 않는 예술성 있는 명반을 연속해서 발매하면서 힙합 분야를 넘어서 2010년대 최고의 아티스트이자 음악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힙합이 전 세계의 대중음악을 사로잡게 된 역사적 배경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흑인의 삶의 곤경과도 매우 관련이 있지만 또 그것이 상업적인 소비상품이 되었을 때 그것은 흑인만의 영역이 아니라 전 세계 팝 시장에서 항상 주류를 차지했던 백인 음악과 경합을 벌였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즉 아프로 아메리칸 청년들의 백인사회 주류 담론과의 갈등, 투쟁, 타협하는 경합의 장이라는 점도 힙합 뮤직에서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특히 최근 힙합의 다양한 경향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힙합이 잡다한 음악적 문화적 요소들의 지속적인 융합과 잡종 교배의 산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티의 배경음악으로 출발한 랩은 80년대 중반 이후에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흑인 게토의 열악한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흑인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장르로 정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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