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 음악, 일본 음악, 힙합 문화, 뉴노멀 시대 음악 전망

1960년대 일본 문화와 일본에서의 포크뮤직

1960년대 일본 문화와 일본에서의 포크뮤직

1960년대 일본 문화와 일본에서의 포크뮤직
1960년대 일본 문화와 일본에서의 포크뮤직

이른바 60년대는 혁명의 시대, 저항의 시대로 회자되는데요. 60년대 포크 뮤직은 대중문화의 소비 주체로 부상한 청년 세대의 파워를 알려주는 상징이었습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등과 같은 청년 뮤지션들이 포크 뮤직을 매개로 해서 민권 운동이나 반전 운동과 같은 급진적 반체제 운동을 이끌면서 이 사회에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부조리하고 위선적인 세계에서 진부한 사랑 타령이나 해대던 대중음악 씬에서 청년들은 통기타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프로테스트 포크야말로 사회 변혁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믿었고요. 또 거기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포크 뮤직은 60, 70년대에 걸쳐서 청년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해 주기도 하고 또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독보적인 문화 장르로 급부상해 갔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포크 뮤직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는 만큼 부르기 쉬운 가사와 듣기 편한 멜로디에 녹록지 않은 스토리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에 불과했던 포크가 보통 사람들이 주체가 돼서 강력한 사회적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이 바로 이 60년대 포크 뮤직이었죠. 이렇게 냉전 체제에 따른 시대적 중압이 만연했던 사회에서 무언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보다 직접적인 사회 변혁을 갈망했던 60년대의 청년들에게 대중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포크 뮤직은 그 어떤 슬로건보다 더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포크 뮤직

그런 포크 뮤직의 감성은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서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 포크 문화를 형성하면서 서울의 명동과 종로, 일본의 도쿄와 간사이를 중심으로 퍼져있었던 음악다방을 통해서 독특한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선도해갔습니다. 또 60년대 초에 영국의 비틀스가 일으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흐름 속에서 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록큰롤을 연주한 밥 딜런의 변신은 락 음악의 새로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을 예고해주었죠. 락 음악은 파괴적인 기타 사운드와 강력한 드럼 비트로 아름답고 질서 정연한 음악들을 배반하면서 청년들의 혁신을 표방하는데 적합한 장르라고 인식되면서 지금까지도 대중음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죠. 자유에 대한 열망과 청춘의 폭발적인 열정을 표방한 락 정신은 기성세대의 고루한 질서를 반역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견인해 가고자 하는 어떤 특별함이 놓여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풍경이 6, 70년대의 특별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60년대 일본 청년 문화

1960년대의 일본 청년 문화는 어땠을까요? 60년대 포크 페스티벌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고백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때의 풍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말 그대로 60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가장 미숙하고 그런 이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1960년대라는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버렸다. 도어즈에서 비틀스, 밥 딜런까지 BGM도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1960년대라는 시대에는 과연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지금 떠올려보아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이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리들 시대의 포크 로어에 있는 글인데요. 이렇게 60년대에 일본 청년 문화의 특별함이라는 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출생해서 고도 경제 성장을 경험한 청년 세대가 현대 소비자본주의의 대중문화 생산자의 첫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작됩니다.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틀에 박힌 낡은 사고방식으로 간주한 그들은 기성의 가치관과 도덕 관습을 해체하고 자기 자신의 개성과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추구해갔던 것입니다. 60년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은 과거부터 쭉 유지되어왔던 생활 관습 즉 무엇이든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오던 생활 관습을 단번에 대량 소비, 대량 폐기하는 습관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경제적 풍요는 마치 크리넥스 휴지를 쓰다 버리는 것과 같은 일회성 소비사회로 탈바꿈시켜버렸고요. 그것은 소비자본주의의 속성과 맞물리면서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자연스러운 생활 습관이 되어 갔습니다. 기성세대는 과거에 비해서 관용적인 교육 방식과 함께 물질적 풍유가 60년대의 청년 세대를 버릇없고 과격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들은요, 부모들로부터 계승한 자유와 평등사상, 평화와 민주주의 과학 기술의 진보가 가지고 온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또 거기에 은폐되어 있는 어떤 사회 모순들에 대해서 도덕적 감성으로 대응해 가려고 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즉 기성세대의 부패와 거짓말에 대해서 청년들은 순수한 도덕성과 윤리성으로 대적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풍요로움에 의존하지만은 않았고요. 오히려 자본주의의 발전이 초래한 인간 소외라든가 또 거기서 발생하는 삶의 모순들을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즉 1960년대는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서 시민사회의 양식을 확립해 간 동시에 그동안 억압과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