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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 일본 음악, 힙합 문화, 뉴노멀 시대 음악 전망

1960년대 일본에서 포크음악의 영향

1960년대 일본에서 포크음악의 영향

1960년대 일본에서 포크음악의 영향
1960년대 일본에서 포크음악의 영향

60년대 말에 일본 학생 운동에 대해서 시종일관 냉소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는 작가가 바로 무라카미 류인데요. 이 무라카미 류의 소설인 69에서는 이런 당시의 무력감을 나약하고 철없는 청년들의 치기로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1968년 10월 21일인 국제 반전의 날은 일본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폭력 투쟁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데요. 이때 이 시위대들은 전 세계를 향해서 베트남 전쟁 반대를 위한 공동 행동을 호소하고 또 국내에서도 대규모 베트남 반전 공동파업을 선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서 이날 일본 각지에서 학생들과 경찰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는데요. 특히 베트남 전쟁의 후방 병참 기지였던 오키나와 반환 문제를 둘러싸고 대규모의 시위대와 연결되어 있었던 이 일본 포크 뮤지션들은 신주쿠 역에서 매일 신주쿠 니시구치 포크 게릴라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포크음악을 통한 반전운동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면서 일본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경유해서 대량 무기와 병력이 전쟁터로 수송되고 있었는데요. 이때 베트남 반전 운동의 일환으로 규슈의 사세보항에서는 미군 잠수함인 엔터프라이즈의 호의 정박을 막으려는 학생 데모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분위기를 고양시켰던 중요한 수단도 역시 포크 음악이었는데요.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그리고 있는 장면은 바로 이 무렵에 전개된 그 대중의 냉소적인 시선을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포크 음악은 일본의 반체제적 사회 운동과 반전 운동을 이끌었던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했는데요. 또 밥 딜런의 포크록 분위기가 이렇게 다시 일본적 포크로 부활하기까지는 72년도쯤 돼서 요시다 타쿠로가 등장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카바야시 노부야스

오카바야시 노부야스는 계속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와 하층 부락민의 애환을 읊으면서 포크 음악의 재기를 꿈꿨지만, 결국은 시골에 들어가서 귀농 생활로 은둔했습니다. 그러다가 75년부터 일본의 정치 체제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그런 정통 포크 음악으로 다시 귀환한 이후에 현재까지도 전국 투어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는 등 여전히 포크계의 신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오카바야시 노부야스는 여전히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접합을 실현하면서 특히 한국의 사물놀이 공연에 영감을 받는 등 실험적인 포크 장르를 개척해 갔는데요. 가령 일본의 전통 악기인 샤미센과 같은 악기와 또 장구, 꽹과리와 같은 한국의 전통 악기를 접목하면서 헤야노 야노야 어기야 뱃놀이 가자 이런 말로 시작되는 뱃놀이라는 노래를 열창해서요.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열정적인 영상을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앞에 들었던 것은 뱃놀이라는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실험적인 곡이었고요. 두 번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라는 오카바야시 노부야스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두 음악을 들어보면서 여러분 일본의 포크 음악의 분위기를 잘 느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